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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포럼

금융제국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

이번 글에서는 세계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고 추가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창설자는 유대인 출신의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물건, 보석, 동전, 직물은 물론 환어음을 취급하였습니다.

19세기 독일에는 궁정 은행가 또는 팩터가 있었는데, 궁정 은행가들은 대부분 유대인으로 절대왕정 시절 궁정에 필요한 귀금속은 물론 동전을 제작해주기도 했고 금융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셀리그만 가문, 오펜하임 가문 등과 함께 많은 궁정 팩터 중의 하나였습니다.)

 

헤세카셀 궁정의 팩터로서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무역업을 유지했지만 점차 은행업에 주력했고, 1810년 아들 다섯 명을 사업 파트너로 불러들여 엠 에이 로스차일드와 아들들을 설립하게 됩니다.

(다섯 아들은 나이순으로 암셀, 살로몬, 나탄, , 제임스)

 

나탄 로스차일드는 1798년 이미 영국 맨체스터에서 직물 무역과 환어음 거래를 했고, 1804년 은행업을 영위하기 위해 엔 엠 로스차일드를 런던에 설립했습니다.

제임스는 1812년 파리 사무소를 설립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1815년에 다섯 형제는 사업 재정비를 위해 파트너십 계획을 맺었습니다.

암셀과 칼은 프랑크푸르트를 맡고, 나탄은 런던을, 제임스와 살로몬은 파리를 맡았습니다.

1844년부터 다섯 개 지점을 독립 법인으로 운영했는데 프랑크푸르트는 암셀, 런던은 나탄의 네 아들, 파리는 제임스, 빈은 살로몬, 나폴리는 칼이 책임졌습니다.

1863년에 상속인이 없는 암셀이 사망하면서 그 지분을 칼의 두 아들이 인수했고, 영업이 신통치 않은 나폴리 법인을 폐쇄하고 4개 지점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863년 로스차일드 은행의 자본금은 55,800만 프랑에 달했는데 4개 지점에 균등 분배되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금융 제국은 20세기 들어서도 국가 간의 정치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